1443년 12월 (세종 25년)
언문 스물여덟 자
『세종실록』 1443년 12월 조의 끝에 날짜 없이 ‘이번 달에 임금이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한글 창제를 알리는 첫 공식 기록입니다.
The Hangeul Journey
2026년은 1926년 첫 ‘가갸날’ 기념에서 꼭 백 년이 되는 해입니다. 다만 그동안 한글날의 날짜는 여러 번 바뀌었고, 10월 9일에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1945년부터입니다. 사료와 공공기관 자료로 확인한 사건만 실었습니다.
전체: 사건 13개
1443년 12월 (세종 25년)
『세종실록』 1443년 12월 조의 끝에 날짜 없이 ‘이번 달에 임금이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한글 창제를 알리는 첫 공식 기록입니다.
1446년 9월 상순 (세종 28년)
해례본에 실린 정인지의 서문에는 ‘세종 28년 9월 상순’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습니다. 흔히 ‘반포’라 부르지만, 같은 달 실록 기사는 해례본 원고의 완성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1926년 11월 4일 (음력 9월 29일)
훈민정음 반포 8회갑(480돌)을 맞아 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와 신민사가 요릿집 식도원에서 첫 기념식을 열었습니다. 이날 ‘가갸거겨’로 글을 배우던 데서 ‘가갸날’이라는 이름이 정해졌고, 이후 차차 ‘한글날’로 굳어졌습니다.
1926년 11월 4일
제생원에서 시각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던 박두성(1888~1963)이 제자들과 함께 연구한 6점식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반포했습니다.
1931~1932년 무렵
음력으로 지내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불편을 덜기 위해 1446년 음력 9월 29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29일에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1934년
율리우스력이 아닌 그레고리력으로 다시 계산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1934년부터 10월 28일에 기념식을 열었습니다.
1940년 7월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정인지 서문의 ‘9월 상한(上澣)’이라는 기록이 알려졌고, 이는 훗날 10월 9일이라는 날짜의 근거가 됩니다.
1942년
중일 전쟁 이후 기념식을 열기 어려워졌고,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기념식을 주관할 이들이 모두 투옥되었습니다.
1945년
광복 후 10월 9일에 공개적으로 기념식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입니다.
1991년
공휴일이 많다는 이유로 1991년부터 한글날은 공휴일에서 빠졌습니다. 기념일로서의 행사는 이어졌습니다.
2005년 12월 8일
한글날을 국경일로 하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2013년
2012년 12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령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2013년부터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2026년
1926년 첫 가갸날 기념에서 100년, 해례본 완성(1446)에서 580년, 훈맹정음 반포에서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